나의 이야기

어버이날 생각하면

초 은 2017. 5. 8. 13:46

2017.5.8. 어버이날이다.

새벽에 방콕여행 중인 둘째딸이 어버이날 감사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맙다.

어버이가 되어서 자식사랑은 무한책임이다.

너희들도 좋은 어버이가 됐지만, 가이없이 잘해라 격려했다.

우리내외는 삼남매를 힘써 길렀는데,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쉽다.

어쩌면.......그래서 손주들이 더 귀엽고 사랑스런지 모르겠다. 나이들어 손주들

돌보기가 힘들어도 네 녀석을 애써 봐주고 있다.

 

 

어버이날이면 곧잘 부모님 생각이 난다. 오늘도,

 

못 난 집착이 오늘도-어머니를 그리며

 

후텁지근한 여름이면 곧잘 어머니 생각에 잦아드는데

이제는 없어 질만도한 못난 병입니다.

내 어머니는 지금의 나의 나이일 때

한여름 찌는 더위에도 배어나는 아픔을 흩어짐 없이 사시다

찬바람이 일 때 훌쩍 가셨습니다.

 

땅 속 깊은 곳에 바다가 있겠니.

바다 속 깊은 곳에 땅이 있겠니.

내 어머니는 깊고 시원한 곳으로 가시고 싶으셨나 봅니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모루 쇳덩이가 아흐레 밤낮을 떨어져야

닿을 수 있는 깊고 깊은 곳 말입니다.

 

그 뒤로 나는

어머니는

눈을 감아야 볼 수 있고

귀를 막아야 들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나의 나이도 어머니 나이만큼 되었으니

내 못난 집착의 병도 좋아지겠지요.

<2008.7.11>

 

아버지를 그리며

 

10년만 더 살면 100수냐 하시더니

동지섣달 긴긴밤에 문득 잠이 깨시면

땅이 풀리려면 아직 멀었지 하시더니

자식들과 헤어지는 것도

인연 따라 가는 것인데 따뜻할 때

헤어져야 고생들을 덜 하지 하시더니

하늘과 땅이 포근하고 고요할 때

한없이 따뜻한 모습으로

홀연히 길을 떠나셨지요.

 

어려서는 한문이 좋아 한학을 하셨고

젊어서는 면서기로 동네일을 보셨고

한국동란 때는 살림이 곤궁하여 고생하시다

서울로 올라오시어 잡화가게로

식솔들을 거느리시고

중년에는 한학과 한의학에 몰두하시며

새로운 인생을 그리셨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하자

자식에게 여한을 넘겨주시고

이순에 시골 땅으로 돌아오시어

동네 아이들에게

천자문(千字文)과 소학(小學)을 일러 주시며

농사일과 불사(佛事)에 전념 하셨고

노년에는 금강경(金剛經)을 즐겨보셨는데

볼 때마다 뜻이 새롭다 하시며

얼마나 많이 보셨는지

책장이 군데군데 헤어져 나갔지요.

 

언제나 부지런 하셨는데

무엇을 이루고자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이 나쁜 일의 근본이 된다 하시며

운명하시기 며칠 전 까지도 일을 하셨고

자식들을 가르치심에

온화함과 냉정함이 분명하셨지요.

 

효심이 깊으시어

부모님 공양이 지극정성 이셨는데

고된 농사철에도

문안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고

심신이 천근만근 찌드셔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서른다섯에

66세 되신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황망했다 하시였고

쉰둘에 84세 되신 할머니를 여의시고

불효라 하셨는데

아흔이 되신 오늘

그리도 그리워하시던 부모님 곁으로

그 분들보다

더 늙으신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서방세계 불국토(佛國土)에서는

어머니와 두 분이 오붓하게 자리 하시어

다정다감하신 모습으로

부부의 연을 오래도록 누리십시오.

 

<2002224일 불효자 순환 올림>

 

 

 

장모님이 한국에 계시다가(1.25~4.24) 처이모님 처외숙모님과 함께 미국집으로

가셨다. 세분 모두 연세가 높아 다시 한국에 오시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계실 때 잘 해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넉넉잖아 못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