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정월(正月) 대보름이다. 초저녁까지 날이 흐려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없겠다 했는데 8시가 넘어 구름사이로 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재천으로 나가 보름달을 쳐다보다 무언가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불현듯 일흔일곱인 나는 열일곱이고 일흔일곱이 되신 어머니가 기도가 서툰 나를 대신해 소원을 빌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일곱 고등학생 때 일이니까 60년 전 일이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겨울 한철 살림에 필요한 쌀이며 연탄 등을 사 주시고 영월 청령포(淸泠浦) 근처 절집으로 가셨다. 어머니는 절집에 다녀오신 후 가끔씩 정한수 한 그릇과 백설기 한쪽을 쟁반에 바쳐 부엌 앞에 놓고 달을 보며 소원을 비셨다. 그때 그런 일을 겉으로 몇 번 보았는데, 어느 추운 겨울밤 달을 보며 기도하는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꿈결인 양 어렴풋이 보인다. 차갑게 언 가냘픈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정성스레 가족과 친인척을 읊조리며 소원을 비는 모습이 한없이 거룩해 보였다.
그때보다 가족도 훨씬 많아졌으며, 공부한다고 외국에도 나가있고, 또 하는 일도 저마다 다양해서 기도하기 무척 힘드시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3일 전 아버지 기제(忌祭) 때 어머니가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은 것 같다. 그랬다. 어머니는 집안 식구는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도 잘살게 해 달라 비셨던 분이셨으니 우리 보고도 잘살고 건강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을 것이다. 구름이 거의 걷히고 밝아지는 달을 보며 나도 하나 빌었다. 둘째 손자가 팔을 다쳤는데 빨리 낫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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