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의사협회 회원으로 협회회관건립사업(1994년4월~2005년5월)과 협회역사편찬사업(2008년10월~2012년 12월)을 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 뒤늦게 공적을 평가한다고 한다. 두 가지 사업 중 회관은 크게 아쉬운 것이 없는데 역사편찬사업은 몇 가지 미흡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한의사라는 직분이 의료정책에서 홀대(忽待)받던 시기에 한의학을 지킨 분들의 행적을 정리할 때 그랬는데 이학호회장에 대한 소회(所懷)를 이 기회에 밝힌다. (사진/이학호회장 산소 위치)
한의협의 모체인 대한의사총합소(大韓醫士總合所)가 1898년 10월 결성될 때 초대회장 최규헌(崔奎憲/의생면허 97번)과 2대회장 이학호(李鶴浩/의생면허 113번)의 공로가 대단했다. 그리고 이후 업적도 찬연(燦然)했는데 사후 행적이 묘연(杳然)하여 추적하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이학호회장의 증조부가 한국천주교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李承薰/베드로;1756~1801)이란 사실을 알았고, 이리저리 연락하다 어렵사리 증손자인 이대균(李大均/경기산본)씨를 만났고,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 177번지 <평창이씨 익평공파> 선산(先山) 끝에서 산소를 확인했다. 명문집안이지만 조선말 천주교박해와 일제치하 공직(公職)에서 축출되는 바람에 말년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였던 형제들이 일찍 순교(殉敎)했고, 이학호회장도 84세에 작고(作故)할 때 자손들이 단출하여 선산(先山) 아래쪽 토양이 척박한 외진 곳에 묘지(墓地)를 조성하는 바람에 산소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직계가족과 산소문제를 의논한 결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대한의사총합소 제2대회장과 조선의생회간사장> 공적을 표시한 작은 묘비만 세우기로 하고, 이학호회장 서거 80주년이 되는 2014년 9월 25일 묘비를 건립했다. (사진/2014년 9월 산소 전경)
8년이 지난 2022년 11월 27일 아침 일찍 산소를 다녀왔다. 산소는 그때나 비슷하게 보존되어 있는데, 주위에 친인척들 수목장(樹木葬)이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 보였다. 동네 주민을 만나서 근황을 들어보니 평창이씨 문중에서는 이학호회장의 묘비석을 보고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랬다. 직계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그렇겠지. 집으로 돌아오며 온갖 생각이 났지만, 조만간 경기도한의사회 회장단과 묘지관리문제를 의논하기로 작정했다. (사진/2022년 11월 산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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