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별명(別名)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제 호(號)가 지인(知人)사이에 초은(草恩)으로 알려졌는데, 원래는 초은(草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는 돌팍(dolpak)이었고, 후에 덕상(德相)이란 수계명도 받았으니 전부 3개인 셈입니다. 조선말 선비인 김정희(金正喜)는 추사(秋史) 등 낙관으로 드러난 아호만도 80여개라 하는데 다 연유(緣由)가 있다고 합니다.
마침 제 별명에 대한 글이 고교동창카페에 두 번<2005년 5월/2008년 10월> 나왔기에 캡처하여 연유에 참고할까합니다. 그러니까 돌팍<dolpak>은 1968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붙여준 것으로, 길가다 걸핏하면 발에 차이는 <돌멩이 돌(dol)>에다 <박(朴)씨(pak)>가 연유입니다. 당시는 로마자표기법으로 박씨를 Pak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곤 고교동창카페에서 사용했는데, 다른 카페에서 활동할 때 <dolpak>이 격에 맞지 않다고 해 <초은>으로 변경했습니다.
초은(草隱)은 1976년 한의사로 첫 발을 내디딜 때 약초에 조예가 깊은 어른이 지어주신 것입니다. 은(隱)은 <숨다/기대다/의지하다> 등 여러 뜻이 있는데 평생 약초에 묻혀(숨어) 살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은(隱)자가 까다로워 표기할 땐 주로 한글로 썼습니다. 그러다 2000년 초 이름대신 아호를 사용하는 동호회(同好會)에 가입할 때 어느 분이 “초은이 무슨 뜻입니까”하고 묻자 사회자가 “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고사(故事)와 연관되지 않았겠습니까. 직업도 한의사이시니까요”라고 잽싸게 말하자, 모든 회원이 그렇겠다고 박수를 치며 환영하는 바람에 변명도 못하고 우물쩍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草隱>을 얻은 지 25년이 지나 엉겁결에 <草恩>이 됐는데,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사람의 가정사(家庭事)와 무공담(武功談)의 고사성어(故事成語)에서 연유한 <草恩>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호를 지어주신 어른이 당시 안 계셔 말씀도 못 드리고 20여년이 흘렀습니다. 맘 한구석 찜찜했는데 , 지금은 동호회(同好會)도 안 나가고, 또 여태껏 <초은>이라 한글로 썼으니 계속 한글로 쓰고, 혹여 누가 한자를 물어 본다면 초은(草隱)이라고 답할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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