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을 앞두고 봄냄새를 맡을까 나선 게 많이도 걸었다. 수서역에서 대모산 구룡산을 거쳐 염곡동사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양재시민의숲까지 걸었다. 이후 서울따릉이을 타고 대치역까지 와서 동네에서 볼 일을 보고 집에 와 걷기앱을 보니 꽤 많이 걸었다. 몇 가지를 적어놓고 싶은 것이 있어 일기를 썼다.
한요욱(96세)회장님. 같은 동(棟)에 사신다. 예전엔 협회 행사에 같이 참석하면 함께 귀가하곤 했다. 내가 후두암 수술을 했을 때 위문차 집에 오시어 집사람이 당황한 일화도 있고. 아흔이 넘어서도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신촌 한의원으로 출근하셨다. 자제분이 마련한 편안한 교통편도 한사코 마다하시고. 근래엔 정신이 흐려지셔 진료를 그만두고 요양원에 다니신다.
서관석(82세)회장님. 협회회관과 협회사를 만들 때 모셨던 선배님이다. 일전에 전화가 왔다. 흘러간 옛날이 좋았다며 “자네도 칠십이 넘었지” 물으신다. 당신은 일주일에 네 번 출근하시는데 거의 아들이 맡는다고 한다. 그만두면 뭐하냐고 (내게) 죽을 때까지 하라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과 똑같다.
큰딸에게 헌 돈을 주었다. 초등학생인 아들 둘이 개굴지게 놀거나 공부가 생각대로 안 되면 힘들어 하는 눈치다. 예전에도 가끔 헌 돈을 모았다가 줬다. 옆에서 집사람이 보고 “친정아버지 사랑이 여전해서 큰딸 기분이 좋아졌네”하고 웃었다. 작은딸에게 줄 헌 돈도 이미 마련해 놓았다. 딸들 형편이 그냥저냥 되지만 그야말로 시집 간 딸들을 생각하는 친정아버지 마음이다. 막내아들한테도 배려한 것이 있다. 함께 사람을 만나보기로 약속했다.
<社會的 距離 두기>로 <社會的 動物>이 亂離다. 잣대(絜矩之道)가 權力者마다 달라 <내로남불>이다. ‘百姓’으로 살자했건만 차라리 ‘犬豚’이고 싶다. 열불이 끓어 못살겠다. 유튜브(放送)를 抛棄한 親舊가 理解된다. 오늘 따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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