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에 취한 환자와 욕을 하며 싸웠다. 집에 와 생각하니 잘잘못을 가릴 것 없이 몹시 부끄러웠다.
한의사를 천직(天職)으로 알고 이날까지 45년 종사하면서 얼마나 못난 짓을 했을까.
한순간 분(瞋)을 참지 못해 성(恚)낸 짓을 몇 번이나 했을까. 참으로 어리석은(癡) 짓이었다.
이럴 땐 산엘 갔는데 비가 와서 봉은사로 가면서 불편한 심기(心氣)를 친구에게 말했더니 위로의
답이 왔고, 추사김정희선생기적비(秋史金正喜先生紀績碑)와 판전(板殿)을 보자, 다산(茶山) 추사(秋史) 초의(艸衣) 세 사람이 떠올랐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년(壬午年)~1836년<75세> 여유당(與猶堂)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년(丙午年)~1856년<71세> 과지초당(瓜地艸堂)
초의 장의순(艸衣 張意恂 1786년(丙午年)~1866년<81세> 일지암(一枝庵)
세 사람 모두 말띠생으로 다산이 추사와 초의보다 두 띠(24살) 연상이다.
출생은 경기남양주(다산) 충남예산(추사) 전남무안(초의)이며 묘소는 관직(官職)에 있었던 다산과
추사는 고향에 있으며 선사(禪師) 초의는 대흥사(전남해남)에 부도가 있다.
세 사람의 관계는 대략 이런 것으로 알고 있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流配)돼 있을 때 학문을 사사(師事)한 초의는 차(茶)를 좋아한 다산에게 다도(茶道)도 배웠고 후에 다선삼매(茶禪三昧)의 경지에 이렀다고 한다.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추사는 빼어난
필체로 초의에게 정겨운 편지를 자주 썼고, 초의는 때맞춰 만든 차를 추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세 사람 다 자신의 학문과 시서화(詩書畵)에 조예(造詣)가 깊어 『經世遺表/牧民心書』(다산) 『歲寒圖』(추사) 『東茶頌』(초의)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세 사람을 생각하며 탐진치 삼독(三毒)에 빠진 것을 경계하고 천직(天職)을 부끄럽지 않게 행(行)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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