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초의선사(草衣禪師) 이야기

초 은 2023. 3. 9. 10:44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선사(大覺登階普濟尊者艸衣大禪師). 스님이야기를 태산만큼 듣고 티끌만큼 쓴다. 1786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出生)하여 1801년에 나주 운흥사로 출가(出家)했고 1866년 해남 대흥사(大興寺)에서 입적(入寂)하셨으니 세수(世壽) 81세요 법랍(法臘) 65세다. 속명(俗名)은 장우순(張宇恂)이고 법명은 의순(意恂) 법호는 초의(草衣)며 초의선사(草衣禪師)로 널리 알려졌다.

 

초의스님과 다산(茶山)선생은 지척(咫尺)인 곳에 거처(居處)가 있었지만 승려(僧侶)인 초의가 천주교도(天主敎徒)란 이유로 신유박해(辛酉迫害/1801) 때 고초를 겪었고 유배생활(流配生活)을 하던 다산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보인다. 처음 만날 당시 다산은 48세였고 초의는 24세였는데 학문을 전수하면서 정()이 얼마나 깊었던지 사제(師弟)라기보다 부자(父子)처럼 지냈다고 알려졌다. 초의는 다산에게 학문을 배우는 한편 다도(茶道)도 배웠는데 1830년 이후 다신전(茶神傳) 동다송(東茶頌) 등을 저술할 만큼 그 경지가 상당했다.

 

이 무렵 다산의 아들<정학연>이 초의와 추사(秋史)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초의의 다도에 반한 추사는 제주도(귀양지)에 있으면서 초의에게 종종 차()를 부탁했고, 한때 초의가 백파선사(白坡禪師)()의 논쟁을 할 때 추사가 초의 편을 들어 백파선사를 신랄히 비판한 적도 있다.

 

초의와 추사는 동갑내기나 다산은 이들보다 두 띠(24) 연상이다. 출생이나 성장 및 직분(職分)이 제각각 이였지만 세 사람이 다방면에서 교류하고 친숙하게 지낸 것을 여러 문집(文集)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다산의 문집에서 초의에 대한 글이 많이 누락된 것은 승려와 친하게 지내며 불경(佛經)에 대한 언급이 구설(口舌)에 오를까 염려해서였고, 초의 입장에선 다산초당(茶山草堂)을 자주 왕래하는 것을 두고 혹여 환속(還俗)할 것이라는 소문이 날까 조심해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진설명: 草衣禪師茶禮齋(2021.9.8.)/大興寺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