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年 10月부터 韓醫協歷史編纂委員長으로 일했고 4年 만에 協會史를 發刊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힘든 作業이었는데, 協會의 紀元을 再正立하고 過去의 誤謬를 訂正한 것은 特技할
일이지만, 歷史的 人物을 特定하지 못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許浚에 버금갈 人物을 選定하기엔 時代的으로 醫療體系가 相異해 어려웠지만,
姜宇奎(1859~1920) 池錫永(1855~1935/醫生免許 6番) 朴性洙((1897~1989) 等이 對象이었다.
該當人物의 資料發掘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막상 遺家族이나 子孫들의 反應이 意外여서 일이 進陟되지
못한 점도 있었다.
日帝 强占期 醫生 혹은 儒醫로 韓醫業에 從事하며 獨立運動에 參與한 人士들이 많은데 姜宇奎 金光熙 朴性洙 邊太祐 沈秉祚 嚴柱信 李元稙 李胤錫 鄭九鎔 韓一淸 等은 獨立有功者로 國家에서 認定받았지만, 赫赫한 功이 있음에도 證憑資料가 없어 認定받지 못한 人士도 意外로 많다.
日前에 KBS에서 이런 人物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歷史編纂 當時 韓醫師獨立運動家 資料를 들추다 몇몇 분이 떠올랐다.
松雲 方周赫(1879~1969. 醫生免許 5番 韓醫師免許 680番)은 韓醫界 資料와 『나절로漫筆』 (禹昇圭 著 1978.探求堂) P.345에 “일개 漢醫師로만 볼 그가 아니었다. 숨은 愛國志士다.”라는 記述, 그리고 遺家族의 確實한 證言 等이 있지만 證憑書類가 없어 아직까지 獨立有功者로 認定받지 못했다.
盧鍾喆(1890~1969. 醫生免許 7650番 更新免許 8504番 限地韓醫師 574番)은 日帝治下 1917년~1925년 사이
美國 LA에 살면서 수차례에 걸쳐 獨立義捐金을 寄附했고, 1926년 歸國하여 光州에서 韓醫業에 從事하며
獨立에 寄與했다.
李浩珍(1884~? 醫生免許 6439番 限地韓醫師 276番)은 慶北永川에서 從事하며 慶北韓醫師會 初代會長을 歷任했고, 車公焄(1893~? 醫生免許 7111番)은 京畿道松炭에서 開業한 韓醫師로 地域에서 獨立運動에 參與한 證言이 있었다.
사진은 姜宇奎義士 獨立運動 學術發表會에 韓醫協歷史編纂委員長으로 座長을 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代議員總會에서 韓醫協設立紀元(創立日)을 追認 받기위해 開催한 세미나의 案內(廣告)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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