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님 前 上書

초 은 2020. 10. 2. 22:57

어머니와 편안히 지내시지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올 추석은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친척이 함께 차례나 성묘를 못하게 되어 추석날 아침 막내 자식과

어머님아버님을 뵈러 왔습니다. 올여름 장마와 폭염이 심해 산소 특히 봉분이 훼손되어 지금 단장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훌륭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한의사가 되자 아버지께서 한의원 이름은 여래(如來)라 하고, 형제간에 사이좋게 운영하라 말씀하셨지요. 아버지 분부대로 성남(신흥동)에 터를 잡고, 형님과 한의원을 한 지 벌써 45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살림도 일구고, 자식들 키워 출가시키고, 친인척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다른 일에 한눈 팔거나 욕심내지 말라는 말씀도 지금껏 잘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 성남(신흥동)에서 천직인 한의원을 끝까지 하려 했는데 뜻밖에 일이 생겼습니다. 이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소문이 무성하더니 마침내 성남시청에서 공고가 났습니다. 재개발 때문에 2~3년 안에 철거를 해야 한답니다. 제가 물정에 어둡고 무능하여 이전할 곳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막내 자식이 한의사입니다. 지금은 모교인 가천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만, 언젠가 개업을 하면

터전을 잡아주고,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해주고, 그렇게 대를 이어가는 게 도리인데

오늘 아버지께 송구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어차피 이전을 한다면 한의원 이름이나 운영방식을

바꾸려 합니다. 앞으로 한의사직분이 급변하고 종교적인 이름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45년 동안 아버지의 말씀을 잘 지켰다고 어여삐 봐 주시고, 제 뜻을 헤아려 주시어,

앞으로도 잘 보살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다음에 자식과 찾아 뵐 때는 기쁜 소식을 가져 오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말씀드리고, 어머니와 행복하게 지내십시오.